체크아웃 필요가 없어서 느지막히 일어남
커피 내리고 어제 산 식빵 2쪽을 토스트기에 구워서 크림치즈를 얹어 먹음. 참외도 하나 잘라서 접시에 놓고. 채영이는 안 먹는대. 채영이는 커피만 마셨다.
처음에 3박 4일으로 여행을 계획해서 숙소 예약과 자동차 렌트를 내일(day4)까지만 해뒀다. 둘이 여행 스타일이 맞아서 다행이었어. 자동차는 내일 오전에 반납해야 하니까 그 뒤로 쓸 수 있는 자동차를 예약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식탁에 앉아서 다음 여행에 쓸 자동차를 알아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비쌌다. 채영이가 첫번째 여행 때 낸 돈보다 3배 정도 더 비싸다고 했는데~ 두번째 여행은 주말이라서 그런건지 아님 기간을 촉박하게 해서 그런건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랬다. 하지만 똑같은 캐스퍼로 다시 예약!
채영이 얼굴에 팩하는 것 봄. 얼굴을 다 가려도 예쁘다.
1시 넘어서 점심 먹으러 갔다. 식당은 '이태리부부'. 메뉴는 루꼴라 페스트와 구운 아스파라거스, 문어구이와 이탈리아 감자 매쉬 고추 드레싱, 트러플 비앙코 파스타를 시켰다. 채영이는 아스파라거스 구이를 좋아했다. 특히 애호박을 맛있게 먹었다. 나도 맛있었다. 전반적으로 다 맛있었다. 문어도 부드러웠고, 매시드 포테이토도 고소했고, 파스타도 감칠맛이 좋았다. 그런데 채영이가 정말 맛있게 먹어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이 식당은 채영이가 여행 중에도 진짜 맛있었다고 콕 집어서 몇 번 더 말했다.
동당서림 - 여행자의 ~ 책 구매.
당근과 깻잎
초록 머리를 하신 주인 아주머니, 흰색 강아지 뻐스(bus).
제주유기농당근주스, 당근소르베(아이스크림), 신메뉴깻잎에이드(메뉴판에 없다 ㅋㅋ. 그때 아주머니께서 신메뉴라고 말씀하셨던 것 같아)
그림 그릴 수 있는 흰 종이와 색연필 등이 준비돼있었다. 가게 안에는 가게를 다녀 간 손님들이 자기 개성대로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나는 싸인펜으로 채영이를 그렸고... 채영이도 나를 그려줬다.
엄마랑 카톡을 좀 했는데, 내용이 전혀 유쾌하지 않아서 기분이 갑자기 좀 다운됐다. 그때 쯤 채영이도 기숙사 신청 관련(?)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었는데, 그 틈을 타서 엄마랑 카톡을 하다가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보내버렸다.
며칠이 지나서 깨닫게 된.. 채영이가 진짜 좋은 점은 그 시간 동안 나를 보채지 않았다는 것과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앞에 있는 사람이 꽤 심각하고 찡그린 표정을 하고 카톡을 하니까 당연히 궁금증이 들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래서 채영이가 내게 어떤 일이 생긴건지 몇 번 물어보긴 했지만 나의 모호하고 어물쩡한 대답에 더이상 물어보지 않고 시간을 넉넉히 줬다. 기분을 상해하지도 않았다. 채영이가 좀 예민했더라면 분위기가 어색해질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지금 문득 들지만, 나도 딱히 그 순간에 어색함을 느끼지 못해서 마음 편하게 갑작스럽게 다가온 감정의 동요를 흘려보낼 수 있었다.
소라 주운 바다
차를 해변 옆 공간에 박아두고 바다로 가까이 갔다. 땡볕이라서 피부가 빨갛게 익을 것 같아서 난 검정색 마스크를 썼고, 채영이는 선글라스를 썼다. 채영이는 선글라스가 잘 어울린다. 예쁜 사람은 뭐든 잘 어울리지만 이마랑 코가 예뻐서 동그란 선글라스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고, 본인도 그걸 아는 것 같다. 선글라스만 쓰면 어딘지 모르게 발걸음이 위풍당당해지고... 말투도 묘하게... ㅋㅋ 웃기다.
바다로 가서 바닷물에 손도 담그고, 비어버린 소라 껍데기도 줍고, 바위도 뛰어 건너서 바다에 점점 가까워졌다. 채영이는 쪼리 슬리퍼만 신었는데도 씩씩하게 바위를 잘 건너왔다. 검정색 바다 바위는 울퉁불퉁해서 밟기에 불편하기도 하고 쪼리 슬리퍼를 신고 잘못 밟으면 특히 삐끗해서 쪼리 슬리퍼가 발목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조금 걱정하긴 했지만, 내 걱정이 무색하게 채영이는 자연스럽게, 익숙하단듯, 꽤 여유롭게 바위를 건넜고 그 점이 참 좋았다. 야외활동에서의 움직임이 익숙해보였다. 원래도 이런 사람인지, 혹은 한달간의 제주살이 동안 바다에 더 익숙해져서인지 몰라도 그 점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이전에 학교 다니면서, 채영이와 진달래 색깔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난 붉은색이라고 했고 채영이는 분홍색이라고 했는데, 구글 검색과 지피티의 의견까지 종합한 결과 채영이 말(진달래는 pink다)이 맞은 걸로 결론난 적이 있었다. 내가 말한 붉은색은 새빨간색이라기 보다 다홍색을 말한 것이긴 하지만(그리고 분명히 진달래 색은 하나가 아니다) 어찌됐든 내가 봐도 구글 이미지에서 본 진달래는 분홍색에 가까웠다. 그림을 그리느라 색깔에 민감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진달래 색깔을 상세히 그리고 자신감 있게 얘기할 수 있다는 점이 나랑 비슷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진달래 색이 붉은색이 아니라 분홍색이라고 자신감 있게 주장할 수 있다는 건, 다시 말해서 진달래의 색깔을 대충 빨간 계열로 눙치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평소에 그런 것들을 관찰하고 기억해왔다는 의미기도 하니까. 그래서 그 점이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추가로... 진달래는 꽃이 잎보다 먼저 피고, 철쭉은 잎이 꽃보다 먼저 피는 건 내가 새로 알려줬다. 나는 진달래전도 만들어 먹어봤고... 아무튼 진달래 색깔은 내가 틀렸지만, 진달래는 내가 더 잘 아는 걸로 하고 싶다. ㅋㅋ.
아래는 진달래에 대해서 짧게 쓴 메모(22.8.15)인데, 지금 보니 철쭉한테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철쭉을 싫어하고 진달래를 좋아한다.
철쭉은 아파트 화단에 있다. 철쭉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한 데 모아 잘 자라게 해준다. 이 놈들은 푸른 잎이 완벽히 준비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꽃잎이 핀다. 빼곡히 모여서 빠알간 잎을 자랑하는 철쭉은 징그럽다. 자기 잘남과 예쁨을 어서 보라고 소리지르는 철쭉. 막상 다가서면 잎의 독성이 멀리 떨어지라고 되려 겁을 준다.
진달래는 산에 가야 볼 수 있다.
듬성듬성 있다. 진달래는 잎이 준비되기도 전에 꽃잎이 말도 없이 돋아난다. 관심 없는 사람들은 진달래 꽃이 핀 줄도 모르는데, 스스로 만족했는지 금방 떨어진다. 뽐내지 않아도 그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연출하지 않아도 충분히 예쁘다. 그래서 나는 진달래를 좋아한다.
안친오름
입장료 인당 5,000원. 내가 기분 좋게 단돈 만 원을 현수막에 적힌 계좌로 보냈는데, 유럽에서는 무임승차하는 사람이 왜 갑자기 정직한 척 하느냐고 꼽을 줬다. 웃기지. 그러게. "거긴 유럽이고~ 여긴 한국이니까" 라고 대답했지만, 사실은 너랑 있는 시간 동안 혹시나 누군가가 입장료를 왜 내지 않았느냐고 말을 건네며 우리의 여행을 방해할까봐 그런 것도 있었고 또 입장료 내는 사람이 더 좋은 사람처럼 보이니까 ㅎㅎ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아무튼 그 순간에 그런 생각들을 하고 만 원을 낸 건 아니지만, 내고 보니 그런 속마음이 있었더라.
안친오름은 생각보다 작았고, 노을이 지기엔 시간이 조금 남아서 대단한 풍경은 없었다. 대신 햇빛이 꽤 많이 남아있어서, 햇빛을 등지고 풀잎을 두 발로 좀 다져놓은 후에 돗자리도 없이 그냥 앉았다. 주저하지 않고 맨 바닥에 앉아도 그 모습이 자연스러운 사람은 잘 없다. 여기서 맨 바닥에 '앉을 수 있는 사람'과 '그 모습이 자연스러운 사람'은 엄청 다르다. 전자는 꾸며서 노력할 수 있는 모습이라면, 후자는 그렇게 자라나거나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지내봤어야 나오는 모습이다. 생각해보면 전자는 노력이 묻은 모습이고 후자는 본능대로 행동하는 거니까.. 전자가 더 좋은건가 싶기도 하지만, 본능대로 행동했는데 그게 잘 맞으면 그건 정말 귀한 거다. 그런 사람이 생각보다 많이 없다. 나는 그런 사람이고, 채영이도 그런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앉아서는 풀을 꺾어서 풀다리기(줄다리기인데, 각자 자신있는 풀을 가져와서 X자로 크로스한 뒤에 잡아당겨서 끊어지지 않는 쪽이 이기는 게임)를 했다. 단순하지만 흥미진진하고 또 전략도 필요하고.. 새로운 풀을 찾아서 뜯을 때마다 기대감이 생겨서 전반적으로 항상 재밌는 게임이다. 내가 경력자라서 거의 다 이길 줄 알았는데 반대로 채영이한테 거의 다 졌다. 벌칙도 있었는데, 그런 벌칙이라면 어디 감옥에 갇혀서 2년 정도 매일 해도 좋을 것 같다.
해가 더 내려오고 나서, 반대편으로 좀 더 걸어보기로 했다. 사람이 많이 없어서 좋았다. 작은 방아깨비들이 많아서 방아깨비도 한 마리 잡았다. 채영이가 벌레를 좋아하지 않는데, 방아깨비가 작아서 다행이었다. 내가 메뚜기랑 방아깨비, 여치의 차이를 아냐고 물어봤는데 거기까지는 몰랐다. 하하. 거기까지 알았다면 바로 식장 예약했을지도 모른다.
대충 일몰 다 본 것 같아서 오름에 내려와서 차를 타고 좁은 길을 빠져나왔다. 차를 타고 큰 길로 나서려는데, 눈 앞에 빨간 유리구슬이 이제야 제대로 내려오는 게 보였다.
"어쩌지? 이거 다시 오름 가는게 좋을까.. 후회할 것 같은데?" 라고 하니 채영이도 "난 가면 가!"라고 해서 다시 차를 돌려서 오름으로 2차 방문을 했다. ㅋㅋ. 효율은 없지만 그만큼 더 보고 싶었다는 의미니까, 오히려 더 큰 마음이 더해지는 거다. 태양이 완전히 내려가버리기 전에 빨리 봐야겠다고 생각해서 오름을 꽤 빠른 걸음으로 올라갔고, 빨간 유리구슬과 주황색 일몰을 다시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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