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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양식/시

[거짓말], 김소연

by seorohur 2023. 9. 30.

거짓말

인파를 가르며 장님이 지나갔지
착하지 않은 사람들이 잠시
착해질 수 있도록

호주머니에서 귀찮은 소리를 내는
동전 몇 개를 소쿠리에 넣어주면
착한 사람이 완성되었지

1940년대까지는
파랑색이 여성적인 색이었고
분홍색이 남성적인 색이었대

여성적인 얘기 하나,
이웃나라 대지진이 뉴스에서
보도되었고 나는 눈물을 흘렸고
친구는 나에게
인류애가 있다고 말해주었어

만약 피노키오가
지금 내 코가 커질 거야
라고 말한다면 코는 어떻게 될까

크레타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니까
크레타 사람만이 그 답을 알지

남성적인 얘기 하나,
손에 무기가 없다는 안심을 시키기 위하여
인류는 최초로 악수를 발명했대

착하다며
엄마가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마다
내 심장엔 불이 켜졌더랬다
거짓말을 하던 순간에도

껌을 씹으면 위장은
소화를 시킬 준비를 한대

껌 같은 것이겠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나는 때때로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한다.

나는 신념과 철학이 있는 척 한다.
그렇게 하면 내 마음이 편해지고, 때때로 양심의 울타리를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내가 지켜세우는 신념과 철학이
마치 내가 이상향(선, 올바른 것)으로 여기는 절대적인 원칙처럼 포장되어 다른 이를 공격할 때 쓰이기도 한다.
그것이 나의 위선이 만들어지는 시점이다.

또한 나는 어떤 문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거짓말을 한다.
마음이 넓은 사람처럼 스스로를 속이고, 내 신념과 철학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며 성찰한다.
내 신념과 철학은 한 끗도 바뀌지 않았으나 이런 거짓말을 통해서 마음이 편해진다.
그것이 나의 위선이 완성되는 시점이다.

거짓말과 위선으로 나를 포장한다.
포장된 나는 진실된 내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진실되지 않은 내 모습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잠시나마 그 공간도 편안하게 만든다.

진실과 분간할 수 없는 100% 위선은 선이 된다.
매일 매순간 거짓말쟁이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완벽하게 진실된 사람이 될 지도 모른다.
완벽한 거짓말쟁이는 완벽한 진실쟁이가 된다.

애석하게도 나는 완벽한 거짓말쟁이가 될 수 없나 보다.
그리하여 하는 수 없이 때때로 거짓말쟁이로 살아간다.
때때로 거짓말쟁이인 나는 거짓말을 할 때도 거짓말을 하지 않을 때도 마음이 불편하다.
거짓말을 하자니 낮에 힘들고 ,
거짓말을 하지 않자니 밤에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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